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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2월삼보사찰순례기
경기불교문화원  2011-03-02 10:47:23, 조회 : 5,231, 추천 :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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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새해 삼보사찰순례 무각사, 선암사, 송광사,통도사,해인사, 2월26일-27일 1박2일동안 다녀왔다. 초봄의 꽃샘추위와비가 온다는 일기에보에도 아랑곳하지않고 사찰순례는 진행되었고 30여명의 일행은 불교문화원앞을 26일 오전7시30분에 출발하였다. 첫날비는 오지않았고 날씨는 따스하고 포근했다.첫번째 사찰은 무각사였고 그곳에서 점심공양을 하며 사찰안내를 받았고 송광사로 넘어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우리가 1박을 할 사찰은 선암사였다. 방배정을 받고 저녁공양 저녁예불후 진목스님께서 우리에게 차를 주시며 스님과 담담한 차담을 가지며 2시간여동안 범문을 들었다. 산사에 고즈넉함이 깔리며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선암사는 우리나라 태교종의 총 본산으로 역사와 전통이 잘 보존된 기도 도량이었다. 새벽예불을 마친일행은 아침공양을 들고 통도사와 해인사를 향해 출발하였다.
    

***송광사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의 본사로서 이전에는 대길상사(大吉祥寺)·수선사(修禪寺)라고 했다. 한국 선종의 대수도도량으로서 유서깊은 승보사찰(僧寶寺刹)이며, 통도사·해인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사찰로 꼽히는 절이다. 송광사 창건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없으나 〈송광사사적비 松廣寺事蹟碑〉·〈보조국사비명 普照國師碑銘〉·〈승평속지 昇平續誌〉에 의하면 신라말 체징(體澄)이 길상사(吉祥寺)라는 소규모 절을 지은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고려 인종 이후 거의 폐허화되었는데, 1200년 보조국사가 수행결사(修行結社)인 정혜사(定慧社)를 지리산 상무주암(上無住庵)에서 길상사로 옮긴 다음부터 대규모 수도도량으로 발전했다. 고려 희종은 정혜사의 이전과 때를 같이하여 송광산 길상사를 조계산 수선사(修禪寺)로 개명(改名)하라는 제방(題榜)을 내렸고, 이후 조선초에 이르기까지 180여 년 간 진각(眞覺)·각엄(覺儼)·태고(太古)·나옹(懶翁)·환암(幻庵)·찬영(燦英)·각운(覺雲)·무학(無學) 등 15명의 국사를 배출하는 소위 수선사시대를 열게 되었다. 1395년(태조 4)에 고봉화상(高峰和尙)이 전당을 중건했고, 그의 뒤를 이은 중인(中印)이 1420년(세종 2)에 당우를 증축하는 한편 절의 지위를 높이기 위해 정종의 윤지(綸旨)로 설립된 수륙사(水陸寺)를 폐지하고 선종사찰로 복귀했다. 그후 수선사가 언제 송광사로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으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폐사 직전에 놓인 송광사는 응선(應善)과 부휴(浮休) 등의 노력에 힘입어 명맥을 유지했다. 1842년의 화재와 6·25전쟁 등으로 많은 전각들이 소실되거나 파괴되고 다시 중건되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현재 한국 선종을 이끄는 중심사찰의 역할을 하고 있다. 6·25전쟁 전의 가람배치는 의상(義湘)의 법계도(法界圖)와 같았다고 하며,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국사전(國師殿:국보 제56호)·하사당(下舍堂:보물 제263호)·약사전(藥師殿:보물 제302호)·영산전(靈山殿:보물 제303호)·청량각(淸凉閣)·척주각(滌珠閣)·우화각(羽化閣)·천왕문·해탈문·대장전(大藏殿) 등 50여 동이 있어 대가람의 면모를 짐작하게 해준다. 송광사에 있는 중요문화재로는 목조삼존불감(국보 제42호)·고려고종제서(高麗高宗制書:국보 제43호)·고려문서(高麗文書:보물 제572호)·경패(經牌:보물 제175호)·금동요령(金銅搖鈴:보물 제176호) 등이 있으며 1093년 간행된 대승아비달마잡집론소(大乘阿毘達磨雜集論疏:보물 제205호), 1095년에 간행된 묘법연화경찬술(妙法蓮華經讚述:보물 제206호)과 금강반야경소개현초(보물 제207호), 대반열반경소(보물 제90호), 묘법연화경관세음보살보문품삼현원찬과문(보물 제204호), 영산전목불좌상 등이 있다.

***해인사(海印寺)
대한민국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가야산 중턱에 있는 사찰로서 팔만대장경이 세계기록유산,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장경판전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2교구 본사로 150여 개의 말사(末寺)를 거느리고 있다. 불교의 삼보(三寶) 사찰 중 법보(法寶) 사찰로 유명하다. 대적광전(大寂光殿)의 본존불은 석가모니이다.
신라 애장왕 3년(802년)에 순응(順應)과 이정(利貞)이 창건했다.[1] 그들은 가야산에 초막을 세우고 참선을 했는데 등창으로 고생하던 애장왕의 왕비의 병을 낫게 해주어 애장왕이 절을 창건하도록 했다. 순응과 이정 이후 결언대덕(決言大德)이란 승려가 사찰 창건을 계속했고 주지가 되었다. 918년에는 승통 희랑(僧統希朗)이라는 당시 해인사 주지가 고려를 도와준 데 대한 보답으로 고려 태조가 국찰(國刹)로 삼았다.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속장경(續藏經)》의 간행을 시도한 곳이다.
해인사는 5차례가 넘는 화재로 인해 여러 번 중창되었으며, 그에 따라 창건 당시의 건축은 알 수 없고, 현재의 전각은 대부분 조선 말기 때의 것이며, 3층 석탑·석등 등이 현존한다. 조선 성종 12년(1481년) 이후 8년간 중건하였고,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건축물로서 국보로 지정된 대장경판고(大藏經板庫)에는 유명한 《고려대장경(高麗大藏經)》이 보관되어 있다.


***통도사(通度寺)
경상남도 양산시에 위치한 사찰이다. 영취산(靈鷲山) 남쪽 기슭에 있다.
신라 선덕여왕 재위 중인 646년에 자장 율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해인사, 송광사와 함께 삼보사찰로 꼽히는 큰 절이다. 통도사는 자장이 당나라에서 가져온 석가모니의 사리와 가사를 봉안하여 불보(佛寶) 사찰이라 불린다.
창건 당시에 대웅전(大雄殿)·적멸궁(寂滅宮)·법당(法堂) 등의 건물이 있었고, 금강계단에 진짜 부처인 진신사리가 안치되어 있으므로 대웅전에는 부처의 모형인 불상을 만들지 않았다. 절 이름은 영취산의 기운(氣運)이 서역국 오인도(西域國五印度)의 땅과 통(通)한다고 하여 통도사라 불렀다고 한다. 자장은 이 절에서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쌓고 보름마다 불법을 설(說)하여 계율종(戒律宗)의 근본 도량(道場)이 되었다.
그 후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03년(선조 36)에 송운대사(松雲大師)가 재건하고 다시 1641년(인조 19) 우운(友雲)이 중건하였다.
가람(伽藍) 배치는 동서로 향하고 있는데, 해탈문(解脫門)과 천왕문(天王門)을 지나 오른편에 극락전(極樂殿)·약사전(藥師殿)·성화각(星華閣)·용화전(龍華殿)·관음전(觀音殿)·장경각(藏經閣) 등이 있고, 왼편에 범종각(梵鐘閣)·만세루(晩歲樓)·원통방(圓通房)·감로당(甘露堂)·명부전(冥府殿)·응진전(應眞殿) 등이 배치되어 있다. 다시 중앙의 불이문(不二門)을 지나면 본당인 대웅전에 이른다. 이는 남면으로 배치된 정면 3칸, 측면 5칸의 단층 건물이며, 지붕의 종마루가 우물 정(井)자형을 이룬 독특한 양식의 건물이다.
내부에는 불상이 없고 다만 거대하고 화려한 불단(佛壇)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는 계단(戒壇)에 부처의 사리를 봉안했다는 신앙 때문이다. 특히 이 절에 보관된 은사입향로(銀絲入香爐)는 고려시대의 우수한 예술 작품이며 이 밖에 국장생석표(國長生石標)와 신라 시대의 유품인 3층 석탑·사립탑·석상(石床)·석등(石燈) 등은 진귀한 것이다.
통도사에는 65동(棟)의 건물과 13개의 말사(末寺)를 가지고 있어 해인사·송광사와 함께 대한민국 3대 사찰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양산 통도사 대웅전 및 금강계단(梁山通度寺大雄殿및金剛戒壇)은 국보 제290호로, 통도사에 있는 정면 3칸, 측면 5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의 법당이다. 통도사의 가람건축들은 대부분 동서방향으로 배치되어 있으나 대웅전은 남쪽을 향하고 있으며, 뒤쪽에는 금강계단이 있다. 계단의 사리탑 속에는 자장(慈藏)이 당나라에서 가져온 석가의 진신사리(眞身舍利)가 봉안되어 대웅전 안에는 불상을 안치하지 않고 큰 불단만을 마련하였다.1961년 7월 보수공사 때 발견된 동쪽 합각(合閣) 머리의 서까래 세 개에 쓰여 있는 순치이년갑신오월(順治二年甲申五月)의 묵서명(墨書銘)으로 미루어 보아 이 건물이 1645년(인조 23)에 건축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편집] 설화
대웅전 옆의 연못은 구룡지(九龍池)로 불리며, 통도사 창건에 얽힌 이야기가 남아 있다. 자장이 당나라에서 수행할 때 문수보살이 진신사리와 가사를 주면서 신라 영축산의 독룡 아홉 마리가 살고 있는 연못을 메워 금강계단을 세우고 봉안하라고 알려주었다. 자장이 여덟 마리의 용은 쫓아 보냈으나, 마지막 남은 용이 연못에 남아 터를 지키고 싶어하여 연못 일부를 메우지 않고 남겨둔 것이 지금의 구룡지라는 전설이다.

***선암사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조계산 동쪽 기슭에 있는 절.

선암사대웅전 /선암사대웅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41호, ...
542년(신라 진평왕 3)에 아도(阿度) 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나 〈사적기〉에 의하면 875년(헌강왕 1)에 도선(道詵) 국사가 남방비보(南方裨補)를 위해 경상남도 진주 영봉산의 용암사(龍巖寺), 전라남도 광양 백계산의 운암사(雲巖寺)와 함께 선암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1092년(고려 선종 9)에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크게 중창했으나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되었다. 1660년(조선 현종 1)에 경잠(敬岑)·경준(敬俊)·문정(文正)이 재건을 시작했고, 1698년(숙종 24)에는 호암 약휴(若休)선사가 원통전을 짓고 그 안에 목조관음보살상을 봉안했다. 이어 1701년에는 약 30년간에 걸쳐 완성된 불조전에 과거 53불을 비롯한 60여 구의 목조불상을 봉안했으며, 대웅전의 개수 및 선암사 입구의 석조 다리인 승선교 축조 등 대대적인 확장과 정비가 이루어졌다. 1819년에 불이 나서 건물들이 소실되자 곧 상월(霜月)이 중건했고, 1823년 다시 불이 나자 해붕(海鵬)·눌암(訥庵)·월파(月派) 대사 등이 중수하여 대규모 가람을 형성했다. 이 절은 1911년 조선총독부가 발표한 사찰령과 사찰령시행규칙에 따라 31본산 중의 하나가 되었다. 6·25전쟁 때 많은 건물과 문화재가 소실되었으며, 현재 경내에는 대웅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41호)을 비롯하여 원통전·팔상전·천불각·장경각·강선루 등이 남아 있다. 주요문화재로는 대웅전 앞의 3층석탑 2기(보물 제395호), 입구의 석조 다리인 승선교(보물 제400호), 대각국사진영(보물 제1044호), 대각암부도(보물 제1117호), 북부도(보물 제1184호), 동부도(보물 제1185호), 금동향로(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0호), 화산대사사리탑, 순조가 친필로 쓴 '대복전'(大福田)과 '천인'(天人)이라는 편액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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