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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을 바꾼 중국 禪 기행 | 달마대사(2)] 달마가 남천축에서 중국으로 온 까닭은(2-1)
용민숙  2007-07-04 18:25:20, 조회 : 8,669, 추천 : 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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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이나 짓고 의례적으로 수행하는 것은 백성의 물건을 겁탈하는 것”
‘부처의 마음’ 벗어나 외형 치우친 중국 불교에 준엄한 경고  

‘숭산소림(嵩山少林)’이라고 쓰인 커다란 돌문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소림사 산문인 셈인데 중국에서는 이런 건축물을 패방(牌坊)이라고 부른다. 이른 아침인데도 패방 안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미니버스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소림사까지 운행하느라 바쁘다.

1500여년 전 양쯔강(揚子江)을 따라 뤄양(洛陽)까지 온 달마대사도 이 길을 걸어 소림사에 당도했을 터. 당나라 때 도선(道宣)이 편찬한 속고승전(續高僧傳)에 의하면 달마대사의 나이 140여세 때의 일이니 늙은 짐승이 고독하게 산야를 이동하듯 그의 행각은 말 그대로 천신만고였을 것이다.

그때 밭을 갈던 한 촌부는 달마와 마주치고는 몹시 놀랐을지도 모른다. 훤한 대머리와 부리부리한 눈, 매부리코와 늘어진 귀, 덥수룩한 구레나룻과 모질게 다문 입을 보고 촌부의 아내는 무서워 뒷걸음쳤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남천축국을 떠나오는 동안 중국의 구법승과 상인들에게 중국말을 배웠을 테니, 늙은 달마는 그들을 안심시키고자 눈을 찡긋하며 “니 하오마” 정도는 건네지 않았을까. 그제야 촌부는 살갗인지 옷인지 구분이 안 될 만큼 너덜너덜한 가사를 걸친 달마를 경계하지 않게 됐고, 달마는 쑹산의 지리에 밝은 그에게 수행할 만한 동굴로 가는 길을 물었을 것 같다.

물론 여기에서 촌부 얘기는 나의 상상이다. 사실이라고 해도 역사는 촌부와의 만남을 기록할 만큼 너그럽지 않다. 현실을 사는 대중의 속성도 그러하다. 주인공에게는 열광하고 조연이나 단역에게는 차갑다.

중국 선종의 시조가 된 달마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니 달마는 역사적으로 성취를 이룬 거룩한 선승이고 구도자로서는 행복한 사람이다. 반면 달마를 초청한 양무제는 어떠한가. 황제보살 혹은 불심천자(佛心天子)라고 불리던 양무제는 달마가 있는 한 영원히 조연배우의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다.

무제가 달마를 불러 만난 곳은 양나라 수도 금릉(金陵·현 난징)이었다. 황궁이 아니라 무제 자신이 감독하여 527년에 지은 동태사(同泰寺·현 계명사)에서 만났다. 동태사는 무제가 며칠씩 머무르곤 했던 행궁(行宮)이나 다름없다. 양무제는 광주자사(廣州刺史) 소앙(蕭昻)의 안내를 받고 온 달마를 보자마자 물었다.

“짐이 왕위에 오른 이래 절을 짓고, 경을 소개하고, 중에게 도첩을 내린 것이 셀 수 없는데 그 공덕이 얼마나 되겠소?”

실제로 양무제는 504년 초파일을 기해 도속(道俗) 2만명을 이끌고 황궁에서 도교를 버리고 불교를 믿는 사도봉불(捨道奉佛) 의식을 거행했고, 511년에는 술과 고기를 금하는 단주육
(斷酒肉文)을 공표하였으며, 517년에는 제사를 위해 산 것을 죽이는 행위를 금지케 했다. 또한 나라 안에 도관을 폐하고 도사들을 환속시켰을 뿐만 아니라 지공(誌公) 같은 고승을 왕사로 예우하며 가르침을 받았으며, 수많은 승려와 백성이 법문과 음식을 공양 받는 무차(無差)대회를 열었고, 그 자신이 ‘방광반야경(放光般若經)’을 강의함은 물론 ‘오경의주(五經義注)’ 200여권을 비롯해 많은 저술을 남겼던 것이다.

황제가 이러하니 양나라에는 사찰이 2800개나 번창했고, 승려는 8만2000 명이나 되었다. 양무제의 덕화는 우리나라에까지 뻗쳤다. 신라 법흥왕 때 원표(元表)라는 승려를 사신으로 보냈고, 고구려 장수왕 때의 고승 승랑(僧郞)을 금릉으로 불러 서하사(棲霞寺) 주지로 머물게 했다. 그런데도 달마의 대답은 양무제를 크게 실망시켰다.

“아무 공덕이 없습니다(無功德).”
“어찌하여 공덕이 없소?”
“그런 공덕은 다만 윤회 속의 조그만 결과에 지나지 않는 언젠가 흩어지고 말 것들이오. 마치 형상을 따르는 그림자처럼 있는 듯하나 실제로는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것이 진실한 공덕이오?”
“청정한 지혜는 미묘하고 온전해서 그 자체는 공적(空寂)합니다. 이 같은 공덕은 세간에서 구해도 구할 수 없습니다.”
“무엇이 근본이 되는 가장 성스러운 진리라는 것이오?”
“텅 비어 있으니 성스럽다고 할 것도 없습니다(廓然無聖).”
“짐을 대하고 있는 이는 누구요?”
“모릅니다(不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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