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불교문화원 - 배우는 삶, 나눔의 생활화, 생명공동체
HOME > 불교문화답사 > 성지순례기


[내 인생을 바꾼 중국 禪 기행 | 달마대사(4)] “독살된 대사의 무덤 속엔 신발 한 짝만…”
용민숙  2007-07-28 10:40:18, 조회 : 9,946, 추천 : 269
- Download #2 : 2007071800836_0.jpg (24.5 KB), Download : 114


[내 인생을 바꾼 중국 禪 기행 | 달마대사(4)] “독살된 대사의 무덤 속엔 신발 한 짝만…”

달마선법에 반기 든 기존 불교 세력이 여섯 번이나 암살 시도

죽음도 피하지 않고 몸을 던진 대사가 남긴 진리는 무엇일까 달마동굴이야말로 사방 1장(丈)의 선실(禪室)인 방장(方丈)이다. ‘유마경(維摩經)’의 주인공인 인도의 유마거사도 사방 1장의 선실에서 수행했다고 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1인 선방(禪房)이자, 수행자를 고독하게 가두는 무문관(無門關)이다. 원효도 화려한 서라벌을 떠나 변산반도의 천연동굴 원효방에서 웅크리고 정진했다. 그러고 보니 깨달음이란 육신을 호사시키는 번지르르한 수행 환경과 조금도 상관이 없는 것 같다. 보잘것없는 한 평짜리 초라한 선실이라도 우주를 향해 자신의 전 존재를 던질 수 있을 때 메아리처럼 돌아오는 것이 구경(久境)의 진리일 듯하다.
나는 달마동굴을 떠나지 못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보아도 자생하는 차나무는 없다. 설화는 달마가 뽑아 던진 눈썹이 차나무가 됐고, 혜가는 그 차나무의 잎을 샘물에 달여 마시면서 졸음을 극복했다고 한다. 찻잎에 정신을 맑게 하는 각성(覺醒)의 성분이 있으니 달마와 혜가가 차를 마셨다는 것은 생뚱맞은 얘기가 아니다. 달마는 쑹산에 오기 전부터 이미 차와 인연이 깊었을 것이다. 달마가 중국에 처음 도착한 광둥(廣東) 땅이나 그 이후 머문 곳은 대부분 차나무가 자생하는 양쯔강 지류 주변이었다. 더구나 중국인의 음다(飮茶) 역사는 달마가 중국에 도착한 때로부터 적어도 수백여 년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고대 중국의 신농씨(神農氏)가 하루에 100가지씩 풀잎을 씹던 중 독초에 중독되자 찻잎으로 해독했다는 전설이 있지만, 문헌상으로는 BC 59년 전한(前漢)시대의 선제(宣帝) 때 차를 사고 마셨다는 기록이 보인다. 왕포(王褒)라는 선비가 만든 노예 매매계약서 ‘동약(?約)’이 그 문헌이다. 이 계약서에는 편료(便了)라는 사내 종이 해야 할 일이 적혀 있는데, 여러 가지 항목 중에 무도(武都)에 가서 차를 사오는 일과 손님이 오면 차를 달이는 일도 포함돼 있다.
면벽좌선 중에 졸음이 오면 차를 마셨을 것 같은 달마 앞에 헌다(獻茶)를 못하고 달마동굴을 떠나는 것이 아쉽다. 한 잔의 차를 올리는 일 대신 내가 좋아하는 경봉선사의 다시(茶詩) 한 수를 적어 본다.
하늘에 가득한 비바람 허공에 흩어지니/ 달은 천강의 물 위에 어려 있고/ 산은 높고 낮아 허공에 꽂혔는데/ 차 달이고 향 사르는 곳에 옛길이 통했네(滿天風雨散虛空 月在千江水面中 山岳高低揷空連 茶煎香古途通).
옛 길이란 달마나 혜가와 같은 조사(祖師)가 가고자 했던 길이 아닐까. 경봉선사는 차 달이고 향 사르는 곳에 그 길이 통해 있다고 하지만 수행이 부박한 나로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달마는 면벽하는 동안, 혜가는 단비(斷臂) 후 그 길을 보았을 터이지만 나는 어디에서 그 길을 만날지 아득하기만 하다.
혜가는 달마의 제자가 된 후 멀리 떠나지 않았다. 달마동굴에서 건너다 보이는 발우봉(鉢盂峰) 산자락에 토굴을 지었다. 가까이 있으니 서로의 문답은 시도 때도 없이 이루어졌다. 혜가가 달마의 한마디에 깨달음을 얻은 것도 그때의 사건이었다. 혜가는 달마에게 그 동안 했던 질문들이 부질없음을 깨닫고 자신의 심정을 고백했다.
“스승이시여,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부디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십시오.”
“그대의 마음을 가지고 오라. 편안하게 해주리라.”
“마음을 찾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이미 나는 그대의 마음을 편안케 하였다.”
순간순간 휘둘리는 마음과 반대되는 마음이 있을까. 마음속의 마음, 그것은 무엇일까. 혜가는 바로 그 마음, 찾아도 찾을 수 없는 허공과 같은 그 마음과 일체가 되어 편안해졌다. 안심법문을 듣고 진여(眞如)를 보았다. 진여를 무심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파도 치는 바다와 같은 변화무쌍한 마음이 아닌, 고요한 심연의 바다와 같은 무심(無心)으로 돌아갔기에 혜가는 니르바나(열반)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이로써 혜가는 달마의 수법(受法) 제자가 될 자격을 갖추게 되고, 달마는 제자들을 불러모아 놓고 혜가에게 심법을 전하기에 이른다. 달마의 부름을 받고 온 제자는 혜가와 도부(道副), 총지(聰持), 도육(道育) 등이었다. 달마가 각자 수행을 통해 이룬 것을 얘기해 보라고 하자, 도부가 먼저 대답했다.
“진리는 문자에 집착하는 것도 아니고 문자를 떠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도를 깨닫는 방편으로만 쓰입니다.”
“너는 내 가죽을 얻었구나.”
비구니 총지도 말했다.
“진리는 불국토를 잠시 보는 것입니다. 한 번은 볼 수 있어도 두 번 다시 볼 수 없습니다.”
“너는 내 살을 얻었다.”
도육도 말했다.
“사대(四大·地水火風)는 본래 공합니다. 오온(五蘊·色受想行識)은 실재하지 않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터득할 만한 법은 없습니다.”
“너는 내 뼈를 얻었다.”
마지막으로 혜가가 말할 차례였으나 혜가는 말에 의지하지 않고 침묵만 했다. 그러자 달마가 혜가의 마음을 읽고는 법인(法印·부처님 마음)을 전했다.
“너야말로 내 골수를 얻었도다.”
이 선화(禪話)도 여름날 파초 잎에 듣는 소낙비처럼 내 마음을 쾌하게 한다. 선이란 가죽을, 살을, 뼈를 얻는 것이 아니다.골수를 얻어 마음을 사무치게 하는 것이 바로 선이다.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다. 무슨 일이건 언저리를 맴돌아서는 안 된다. 문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야만 진경(眞境)과 마주칠 수 있다. 더 높이 올라가야만 미답의 산봉우리에 다다른다. ‘바다에 가려면 바다 밑까지 내려가고, 산으로 가려면 산봉우리까지 오르라’는 선가의 말이 바로 그런 뜻이리라.
혜가가 수행한 이조암(二祖庵)으로 오르기 전, 나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만다. 소림사의 탑림(塔林)을 들러보지 않을 수 없다. 탑림이란 소림사에 주석했던 고승의 묘탑(墓塔)이 수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달마와 혜가의 탑도 있지 않을까. 또한 ‘우리나라에서 온 구법승의 탑은 없을까’ 하는 생각도 번개처럼 뇌리를 스친다.
그런데 남송(南宋) 때 희수(希?)선사가 지은 ‘오가정종찬(五家正宗贊)’에는 달마의 최후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유지(流支)와 광통(光統)율사가 대사를 암살하려고 여러 차례 독약을 음식에 넣어왔는데 여섯 번째에 이르러서는 피하려 하지 않았다.(중략) 대사가 입적하시자 웅이산(熊耳山)에서 장례를 치렀다. 그후 당 사신 송운(宋雲)이 서역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총령(總領)에서 대사를 만났는데, 대사는 한 손에 신발 한 짝을 들고 서역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송운이 이를 황제에게 아뢰고, 그의 무덤을 파헤쳐보니 과연 빈 관 속에는 신발 한 짝만 남아 있었다.’
여섯 번이나 대사를 암살하려 했다는 것은 당시 달마선법에 반기를 든 기존 불교 세력이 황실의 비호를 받아 훨씬 더 강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달마선법을 추종하는 수행자는 변방의 소수에 불과했고, 아직도 중국 불교의 주류는 아니었던 것이다.
묘탑이란 장례가 치러진 곳에 세워지기 마련이므로 위의 기록대로라면 달마의 탑은 소림사 탑림에 있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그래도 나는 탑림으로 들어가 탑의 명문(銘文)을 읽어보았다. 당나라 때 전탑(塼塔)부터 최근의 석탑까지 있어 탑으로 쓴 소림사의 역사 같다. 탑림을 배회하다가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우리나라 구법승이 있으리라는 내 영감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圓寂首座金公無用之塔(원적수좌김공무용지탑)’
속명은 김무용이고 법명은 원적, 선사로서 수좌이니 선원장급 수행자의 탑이다. 요즘에는 선객을 모두 수좌라고 호칭하나 당시에는 선실의 으뜸자리에 앉는 수행자를 수좌라 하여 존경했던 것이다. 전체 비문은 마모되어 희미해서 알아볼 수 없으나 탑이 세워진 연대는 보인다. ‘歲正統十年春三月 ○○本 ○○建’이니 명나라 영종(英宗) 10년(1445년) 봄 3월에 세워진 탑이다. 아마도 고려 때 소림사로 건너가서 명나라 때 입적한 선사가 아닐까 싶다. 내 영감이 아니라 원적수좌의 영혼이 나를 초대한 듯하다. 향 하나를 사르며 합장하니 조사들이 가고자 했던 그윽한 옛길로 들어선 듯하다.



  추천하기   목록보기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Notice  ■2017년 상반기 문화답사 일정■    경기불교문화원 2017/03/09 113 2327
 [내 인생을 바꾼 중국 禪 기행 | 달마대사(4)] “독살된 대사의 무덤 속엔 신발 한 짝만…”    용민숙 2007/07/28 269 9946
22  [내 인생을 바꾼 중국 禪 기행 | 달마대사(3)] 본래면목(本來面目), 그대는 누구인가    용민숙 2007/07/28 358 9108
21  [내 인생을 바꾼 중국 禪 기행 |달마대사(2)] 달마가 남천축에서 중국으로 온 까닭은 (2-2)    용민숙 2007/07/04 239 9178
20  [내 인생을 바꾼 중국 禪 기행 | 달마대사(2)] 달마가 남천축에서 중국으로 온 까닭은(2-1)    용민숙 2007/07/04 249 8744
19  [내 인생을 바꾼 중국 禪 기행 | 달마대사(1)] 쑹산이여, 달마대사는 어디 계신가 (1-2)    용민숙 2007/07/04 220 6870
18  [내 인생을 바꾼 중국 禪 기행 | 달마대사(1)] 쑹산이여, 달마대사는 어디 계신가 (1-1)    용민숙 2007/07/04 245 6398
17  중국 동북지방 문화답사(IV)    강경림 2006/02/13 273 7060
16  중국 동북지방 문화답사(Ⅲ)    강경림 2006/02/13 253 7198
15  중국,동북 지방 문화 답사(Ⅱ)  [1]  강경림 2005/12/12 241 7002

    목록보기관리자기능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글쓰기 1 [2][3]
       

Copyright 1999-2018 Zeroboard / skin by zero